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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산문] 페미니스트 김온_익명

  • 작성자 사진: 운영자
    운영자
  • 2021년 3월 25일
  • 2분 분량

페미니스트 김온

익명



“김온은 ‘자칭’ 페미니스트였다. 아무도 그녀에게 페미니스트라고 해주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김온은 이 시대의 여성이었다. 주변의 모두가 김온을 사랑했다. 생각이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다. 다니던 대학교도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정도의 명문대학교였다.

페미니스트인 김온답게 주변에 페미니스트 친구가 꽤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운동이나 다른 것에 더 매달리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인상은 좋았다. 그들은 때때로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인 친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닌 친구가 훨씬 많았다. 애인을 한 달에 한 번씩 갈아치우는 친구도 있었고, 군대에 간 친구도 있었으며 어쩌다 보니 이르게 결혼을 한 친구도 있었다. 김온은 그들 모두를 사랑했다. 김온은 자신의 삶을 꾸리는 데 탁월한 선수였다. 코어 운동을 꾸준히 하고, 글을 쓰고, 취미인 도예를 좋아했다. 가끔 작은 머그잔이나 접시, 수저 받침대 같은 것을 만들어 주변인들에게 선물했다. 친구부터 시작해서, 과외 학생, 후배, 선배까지 가리지 않았다. 우리 집에도 물고기 모양 접시가 있다. 김온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김온에게 고백하는 이도 더러 있었지만, 김온은 연애가 자신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녀는 일종의 양보와 같은 행위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말하기를, “여성들이 무조건 연애와 화장을 지양해야 하는 건 아니야. 나중에 연애와 화장 같은 것들로 여성이 피해를 보지 않게 되면, 그때는 원하는 사람들만 즐기는 문화로 남게 되겠지. 얼마나 멀리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의 세대들을 위해 난 지금을 양보하는 거야. 솔직히 연애하기가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김온의 눈이 반짝 빛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실수하지 않았다는 걸. 그렇지만 김온은 정말 멋진 여성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여자는 말을 마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일기를 쓴 남성은, 일기 속 여성에게 고백했다가 받아주지 않자 여성의 목을 졸랐습니다. 다행히 여성은 평소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고, 빠른 순발력으로 남성의 고환을 차고 머리를 가위로 때려 무사히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남성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현재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라디오라서 이름 부분이 ‘그녀’나 ‘여자’ 정도로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들었지만 김온은 그 명사들이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똑똑히 들렸다. 벌써 8개월 전의 일이었지만 그 날의 기억은 생생했다. 죽기 전까지 그 기억을 온전히 가져가게 될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웠던 볼링 동아리 회장 오빠. 함께 볼링을 치러 다녔던 추억이 정말 많았고, 남자라면 피하게 되는 페미니즘 이야기도 그에게는 편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목이 졸리던 순간 다시는 남자와 어떤 관계도 맺지 못하게 될 것을 알았다.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싫었다.

김온은 라디오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그런지 하늘이 눈부시게 하늘색이었다. 그때, 전화가 울려 블루투스로 전화 연결을 받았다. “온아, 어디야?” “언니! 저 거의 다 왔어요.” 온은 전화를 끊었다. 만날 생각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올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그 남자의 머리에 가위를 박아 넣고 집을 뛰쳐나와 길거리에 주저앉았던 순간, 자신에게 주저없이 괜찮으냐고 물어보았던 사람. 온을 병원에 데려다주고도 걱정이 되었는지 번호까지 주며 연락하라던 사람.

온은 차를 주차장에 대고 식당에 들어갔다. 언니가 밝게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모습을 보았다. 온은 왜인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



주제 :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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