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백일장/산문] 자유_bokdori

  • 작성자 사진: 운영자
    운영자
  • 2021년 3월 25일
  • 2분 분량

자유

bokdori



몸이 무겁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그렇게 A씨는 생각했다.


눈앞의 천장은 가까운 듯 먼 듯 울렁거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큼직한 몸을 옆으로 뉘이니 슬쩍 보인 유리거울에는 보고 싶지 않은 그 자신이 갇혀 있었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를 것 같은 인형 같은 모습. 눈에는 초점이 없고 코는 이렇고 입은 저렇고. 아, 눈 모양은 둥그렇고 큰 것 같기도. 이런, 내가 또.


“A야, 너도 바깥 생활 좀 해야지. 이렇게 좋은 날씨에 넌 뭐하고 있니?”

“...”

“움직이라고, 좀. 최대한 너 움직이게 하려고 말하는 거잖아.”

“알았어요.”


A씨의 어머니는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만 있는 그가 보기 싫었는지 은근 기분 안 좋은 티를 내며 말했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얼굴에 깊게 주름이 패여 있다. 요즘 나이가 들어 보여 피부 관리실에 다닌다며, 얼굴에 각질 제거용으로 아주 따가운 가시가 박힌 팩을 바르고 와서 빨갛게 부어오른 얼굴은 도깨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는 꽤 높고 입 꼬리도 샐쭉하니 올라가 있고. 아, 내가 또.


주섬주섬 옷가지를 대충 주워 대충 입었다. 기본 티셔츠와 바지, 흰 양말에 운동화. 눈앞의 유리거울에는 이제 좀 움직여서,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생기가 도는 A씨가 서있었다. 엄마, 나갔다 올게요. 거울을 보며 콧잔등에 묻은 팩을 만지작거리는 어머니에게 그는 비장하게 말했다. 마치 어떤 전투에 출전하는 것 같이.


길거리에 한 발자국 내딛으면 수만 개의 눈이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 뚜벅, 뚜벅. 응. 뚜벅, 뚜벅. 응? 헤어스타일이 이상한가? 티셔츠의 색이 나와 어울리지 않나? 바지가 체형에 맞지 않나? 내 얼굴이, 내 눈이, 내 코가, 내 입이, 또는 내 팔이, 내 가슴이, 내 허리가, 내 다리가. 그만하자, 내가 또.


A씨는 가만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주위에는 그를 향한 시선 따위 없었다. 아니, 그에게 시선을 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옆 사람 B씨가 한 발자국 내딛으면 단 두 개의 눈이 그를 보고. 옆의 옆 사람 C씨가 두 발자국 내딛으면 단 두 개의 눈이 그를 보고. A씨와 B씨와 C씨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단 두 개의 눈이 그들 자신을 보고. 아차, 내가 또. ‘아차, 내가 또.’, “아차, 내가 또.”


분명 탁 트여있는 공간인데 왜인지 숨이 막혀 헉헉대며 숨을 골랐다.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에 A씨의 볼은 빨갛게 물들었지만 머릿속은 깨끗하게 정리됐다. 인형을 청산하는 날. 단 두 개의 눈을 뽑아버리는 날. 이 따위의 생각을 하며 목표 지점으로 달음박질했다. 무거웠던 몸은 어느덧 가벼이 통통거리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움직여.


‘미용실’


도착한 곳의 유리로 된 문에는 A씨가 비춰졌다. 아직은 초점이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기분 좋은 땀을 흘리고 있는, 얼굴에는 이젠 좀 살아있는 분위기가 드러나는. 긴 머리의 점장이 “A씨, 피부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머리 정말 잘라요? 진짜 나 자를 거라니까요? 괜찮아요?”라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는 A씨. 눈앞의 유리거울 속에는 이미 전투를 끝낸 듯 지치면서도 승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자신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네.”


어깨 너머로 오던 머리를 썰걱썰걱하고 자를 때마다 각막이 한 겹씩 벗겨지는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가벼워지는 느낌이야. A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을 감은 채 점장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눈앞에는 더 이상 유리거울이 없었다.


휴대폰 송금 앱으로 2만 2천원을 계좌에 보내고 “안녕히 계세요.”하고 나오는 A씨. 다시 마주한 길거리에는 여전히 B씨와 C씨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발자국 내딛으면 그들을 따라오는 2 곱하기 n개의 시선들. 아, A씨는 눈알을 두 개 뽑고 왔으니 이제는 2 곱하기 n-1개의 시선들이라고 정정하자. 이제 그는 더 이상 A씨가 아니다.


그는, 그들은,


주제 : 연대


Comentários


  • 화이트 페이스 북 아이콘
  • White Instagram Icon
  • White YouTube Icon

© 숙명여자대학교 제53대 중앙비상대책위원회 '눈보라' 연대복지국 산하 숙명여성의달준비위원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