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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장/산문] 나는 숙명여자대학생이다_다비켜일등은내꺼야

  • 작성자 사진: 운영자
    운영자
  • 2021년 3월 25일
  • 3분 분량

나는 숙명여자대학생이다

다비켜일등은내꺼야



우선 나는 20학번 숙명여자대학교생이다. 20학번이어서 학교에 가본 적은 별로 없다.

커뮤니티를 통해 학교를 접한 시간이 직접 캠퍼스를 거닌 시간보다 길지만, 대학생이 된 나는 고등학생

때의 나와는 아주 다르다. 이 변화는 나의 삶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다. 야망을 주제로 잡고 쓰긴 했는데

나의 야망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우므로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나의 야망을 위해 내가 발전한

점 3가지에 대해 다루겠다.


우선 첫번째, 나는 30살의 나를 꿈꾸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자칭 말하는 ‘한남’이다. 25살이 된

언니 생일날에 ‘이제 꺾일 나이가 다 됐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으며 ‘여자는~’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뭣보다 내가 20살이 된 날에는 ‘이제 밤에 배고프면 라면 끓이기 시키면 되겠다’고 말하기까지

해서 정말 열 받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열 받는다는 거, 열 받을 만한 일이라는 거 정말로 대학교 와서

처음 알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젊은 여자’에 대한 환상을 주입 받았으며 20살이 되면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변이하듯 힐을 신고 치장을 하고 산다는 허황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에

가도 대학원은 가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중학생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30살엔 육아를 하며

회사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몇 년 동안 바짝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다짐이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30살 전에 결혼을 못하는 여성은 ‘노처녀’라고 불렸었다. 나의 애비라는 놈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본인 회사의 노처녀가 히스테릭해서 싫다고 노래를 불렀었고, 나는 그걸

들으면서 결혼을 못하면 히스테릭 해지는구나 생각했었다. 나는 히스테릭한 여성으로 보일 까봐,

‘노처녀’라는 소리가 들을 까봐 30살엔 결혼을 하고 애를 낳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어는 30대의

미혼여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30살의 여성은 아기를 가지고 육아휴직을 하며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는

존재였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 돌보고 청소를 하는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안일하기 싫고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잘 키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지’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혼을 꿈꾸게 되면서 나를 위해 온전히 사용할 시간이 많아졌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와서 나는 육아, 집안일, 남 뒷바라지로 허비하지 않는 30대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남자들은 나의 성공을 위한 발판, 희생양이 될 것이다. 나 같은 인재가 사회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파이를 빼앗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남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고 내 스스로에 대한 검열을 차차 줄일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 자신을

생각하면 자존심은 세지만 자존감은 낮았던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게 화장을 하고

경쟁하듯 교복치마를 짧게 줄이고 연예인 얘기에 끼기 위해 관심도 없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남자애들과 잘 지내기 위해 성희롱에 가까운 장난에도 재미있는 척 웃고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빌빌 기어댔다. 그렇게 남들을 맞춰주며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것은 시간의 낭비와

아주 못나고 인성에 하자 있는 남자와 교제한 흑역사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내가 원해서 사귄

적도 없다. ‘이성인 친구도 많은데 나랑 안 사귀면 나를 가지고 논 어장녀, 걸레다’라는 식의 개소리에

당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귄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는데,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어장녀 타이틀이 붙을 까봐 남의 시선에 위축되어서 남들이 조종하는 대로 끌려

다녔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나를 후려치는 말을 들으면서 열등감에 늘 시달렸다. OO보다 못생긴 것

같아서, XX보다 살쪄서, AA보다 인기가 없어서 등 별에 별 이유로 나를 타인에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

내렸다. 보이지 않는 열등감은 나를 아주 졸렬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찌질한 나 자신의 속내에

실망하여 나 자신에게 정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굴레에 헤맸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와서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나는 사회적으로 억압받으면서 살아왔다는 점, 욕망을 거세당하고 살았으며 내 스스로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여성혐오의 프레임 속에 박제당한 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못난

남자애들은 늘 기고만장하게 살았으며 저보다 잘난 여자애들을 아무 생각없이 욕하고 본인의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고 살았었다. 옛날에는 그게 자기애 넘치고 꽤나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 같은

여자들의 순종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단 걸 깨달은 후, 조금 허무해졌다. 나를 휘둘렀던 바보들을

이제는 내가 휘두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똑똑하고 능력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나는 좀더 냉정하고 덜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다. 일단, 인간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내게

해로운 벌레 같은 사람은 칼같이 끊어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다신 볼일 없는 사람, 쓸데없는

사람들을 우선시하고 신경 쓰며 정신건강을 망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여성이 꿈을 꿈에 있어 가장 큰 방해물이 되는 것은 도덕 코르셋이고나의 도덕

코르셋을 깨부수고 나올 때 내가 비로소 남성과 동등한 경쟁자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근사근한 여성, 배려심이 넘치는 여성, 착하고 겸손한 여성의 탈을 뒤집어쓰기 위해 나의 욕망을

숨기고, 잘못하지 않아도 사과하고 별거 아닌 것에도 너무나 감사한 척하고, 나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며

살았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결국 만만한 애, 능력 없는 애, 막 대해도 되는 애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끝났다. 한번 낙인처럼 찍히고 나니 무엇을 해도 내게 씌워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언가를

성취하여도 그 성취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었다. 지금은 쓸데없이 웃음과 감사인사를 남발하지 않고,

칭찬을 받으면 웃으면서 받아들인다. 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양보하지 않고 누군가와 맞서 싸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싸가지가 없어 보일 까봐 벌벌 떨던 행보들이 사실은 오히려 나의

가치를 내보이고 상대를 기선제압을 할 좋은 수단이었던 것이다. 숙명여자대학교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양보하고 움츠리느라 나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박탈당해도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숙명여자대학생이다. 나는 나 자신, 나의 가치를 누구보다 존중하고 있으며 나의 파이를

위해 전투할 준비가 되어있다. 여자대학교에 온 건 내 생에 있어 예상치 못한 큰 깨달음의 장이었다.

나를 희생하지 않는 법, 나의 성공을 위해 기득권자를 끌어내리는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알고 좀 더 큰 꿈을

꿨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진 듯하다. 글이 많이 긴데 못해도 3등, 아니 2등 안에

들었으면 좋겠다. (상을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을 주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주제 :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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